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소설 | 문예연구 | 2024년 05월 20일 출간 | 208쪽

무한한 밤을 탈출하지 못한 존재들, 그들은 그들만의 진실로서 살아있다.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문체로 존재의 틈을 탐색하는 이우연 작가의 세 번째 소설 『오르톨랑의 유령』은 혼자임을 피할 수 없는, 그러나 고독 속에서도 불가능한 갈망에 가 닿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홀로임에 느끼는 절박한 외로움과 결코 닿을 수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들을 강렬한 언어로 짧고 폭발적인 이야기들에 담아 전한다.

작가는 “이 글은 동시에 혼자일 수만은 없는 것들이 혼자 이상을 원하는 장소들에 관한 글이다. 이곳, 비현실적인 악몽 속에 거주하는 것들은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들은 더럽고 비좁은 틈새에서 불가해한 중얼거림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악몽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로 번역하려 몸부림친다. 그것들은 불가능한 밤을 스스로 번역하고 해석한다. 그 언어가 마침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라고 이 소설을 소개한다.

이 책의 화자들은 혼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따위로 혼자 소리를 내고, 청소 도구함 속에서 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속할 수 없는 푸른빛으로 돌진하면서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갈망을 소리친다. 하지만 홀로 내는 소리는 아무런 반향도 없이 홀로 사그라든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그 소리는 원하는 이에게 결코 가 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소설 속의 조각들은 어떤 소리들을 만든다. 대답하지 않는 작은 개에게 말을 걸고, 피아노의 뼈를 으스러뜨릴 듯 두드려대며, 바이올린의 현에 베고 싶은 것처럼 손을 날카롭게 미끄러뜨린다.

이런 소리들의 파동 속에서 화자들은 살아 있다. 그들은 겁을 먹거나 죽음을 결심하고, 절망에 안식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 그들 자신이 아닌 것에 가 닿기를 원하고 좌절하면서 살아간다.

소설 속 문장들은 불가능한 희망 (혹은 절망)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삶을 사는, 명명되지조차 않은 존재들을 떠오르게 한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인 오르톨랑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소단원 「주방」은 멧새의 일종인 오르톨랑의 잔인한 요리법에서 오르톨랑이 겪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묘사하면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날카롭고 절박하게 표현한다.

<책 속에서>

– 아직 무한한 밤을 탈출하지 못한 짐승들이 이곳에서 몽유한다_4

– 그들은 거짓을 닮은 방식으로, 그들만의 진실로서 살아있다_5

–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떠나간다. 소녀는 고개를 들고 이제는 신적이기까지 한 어둠을 응시한다_17

– 언제부터, 그는 이곳을 견디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 그는 이곳이 되어버린 걸까_77-78쪽

– 나는 상상할 수 있었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기 위해 나는 죽었단다. 말할 수 없음에, 상상할 수 없음에, 소통할 수 없음에, 그 쉬운 말에 인간을 삶을 신을 의탁하지 않기 위해. 나는, 살해자는 오르톨랑의 죽음을 증언했단다. 살해자는 오르톨랑의 몸의 기억과 사물의 기억과 익사의 순간, 잊힘, 충격, 오아시스처럼 솟아나는 검은 피의 울림을 증언했단다_137쪽

-간절하게 존재하고 싶어도, 그녀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_161쪽

-세계에 대한 갈망없이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는 그녀 없이도 세계였다_163-164쪽